사망, 폭행 등 시설범죄 끊이지 않았던 경주시
책임지라는 장애계 요구에 ‘봐주기 행정’으로 일관
끈질긴 투쟁 끝에 장애계 요구 대부분 수용키로

활동가 200여 명이 경주시청 앞에 모였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적힌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다. 폴리스 라인 위로 ‘13년째 반복되는 장애인시설 인권유린 경주시장이 책임지고 범죄시설 폐쇄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붙어 있다. 사진 전장연
활동가 200여 명이 경주시청 앞에 모였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적힌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다. 폴리스 라인 위로 ‘13년째 반복되는 장애인시설 인권유린 경주시장이 책임지고 범죄시설 폐쇄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붙어 있다. 사진 전장연

경주시가 장애계의 끈질긴 투쟁 끝에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보장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6일 밝혔다.

경주시는 장애계 대표단과 약 두 시간 동안 면담한 후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아래 420경주공투단)과 협의해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추진 △인권침해 시설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행정처분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인권침해 일어난 시설거주인에 대한 개인별 자립지원계획 수립 △공익제보자 불이익 예방 등을 골자로 한 정책 협의안을 작성했다.

경주시청 앞에 모인 200여 명의 활동가들. 비가 와서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썼다. 사진 전장연
경주시청 앞에 모인 200여 명의 활동가들. 비가 와서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썼다. 사진 전장연
결의대회 현장. 경찰 수십 명이 경주시청 앞 정문을 방패로 막고 서 있다. 한 활동가가 서서 발언하고 있고 다른 활동가들이 앉아서 듣고 있다. 사진 전장연
결의대회 현장. 경찰 수십 명이 경주시청 앞 정문을 방패로 막고 서 있다. 한 활동가가 서서 발언하고 있고 다른 활동가들이 앉아서 듣고 있다. 사진 전장연

- 사망, 폭행… 시설범죄 뒤 ‘봐주기 행정’ 있었다

그간 경주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선인재활원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상록수재단에서는 2014년, 법인 대표이사가 장애인 7명에게 1천~2천만 원의 입소 보증금을 받고 미등록 상태로 시설에 입소시키는 일이 있었다. 또한 선인재활원 거주인이 법인 산하 직업재활시설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주푸른마을(사회복지법인 민재)에서는 2008년, 당시 14세였던 거주인 ㄱ 씨가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ㄱ 씨는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으나 법인 이사장은 ㄱ 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10년 후인 2018년, 같은 사망 사건이 또 일어났다. 거주인 ㄴ 씨가 내과적 통증을 호소했지만 이사장은 ㄴ 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고 ㄴ 씨는 끝내 사망했다. 또한 이사장은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다단계 업체에 거주인을 가입시키고 돈을 챙기기도 했다. 이사장은 업무상 횡령,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의 가벼운 선고를 받았다. 사망사건은 증거부족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혜강행복한집(사회복지법인 혜강)에서는 폭행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시설원장이 거주인을 폭행하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사실이 2019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혜강행복한집 원장 또한 징역 1년의 사법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시설직원이었던 ㄷ 씨의 제보로 알려졌는데, 그는 공익제보를 했음에도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시설직원이라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스를 수 없는 위치에서 업무수행에 가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장애계는 공익제보자 탄압이라며 법원을 거세게 규탄하기도 했다.

이 모든 시설범죄 뒤에는 경주시가 있다. 경주시는 그동안 ‘봐주기 행정’으로 일관하며 시설범죄를 방관했다. 혜강행복한집의 경우 경주시로부터 행정처분을 두 차례 받은 후 또 폭행사건이 일어나서 가장 강한 행정처분인 ‘시설폐쇄’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하지만 경주시는 2차 처분을 취소하고 다시 2차 처분을 내렸다. 혜강행복한집은 아직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경주시청 앞 활동가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바닥에 앉아 있다. 사진 경북장차연
경주시청 앞 활동가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바닥에 앉아 있다. 사진 경북장차연
우비를 입은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사진 전장연
우비를 입은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사진 전장연

- 경주시, 장애계 요구 대부분 수용… 천막농성 정리

이런 시설범죄가 알려질 때마다 장애계는 경주시에 시설폐쇄와 학대 피해자의 탈시설 지원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경주시의 무책임한 태도를 규탄하며 시작한 천막농성은 오늘로 35일 차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경주시는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탈시설은 예산이 많이 든다’ 등의 입장을 고수하며 장애계 요구를 무시했다.

이에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 200여 명은 6일 오후 2시, 경상북도 경주시청 앞에서 집중 결의대회를 열고 경주시를 향해 범죄시설을 폐쇄하고 탈시설·자립생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사무국장은 “경주의 장애인거주시설은 장애인을 돈벌이로만 보고 경주시청은 시설 측을 비호만 한다. 더는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이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윤종술 부모연대 대표는 “경주시는 경주시민 아닌 사람하고는 대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낙영 경주시장과 대화하러 온 게 아니라 국민으로서 시설폐쇄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게 지원하라고 명령하러 왔다. 시설에 지원할 예산을 장애인에 지원해서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 만들어라”고 성토했다.

경주시를 규탄하는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경주시장과 경주시의회 의원들, 경주시청 공무원들은 시설에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자신들은 편한 집에서 살면서 왜 장애인은 거주시설에 살아야 하나”라며 “우리를 노숙농성하게 만든 모든 책임은 경주시에 있다”고 지적했다.

결의대회는 빗속에서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420경주공투단과 경주시의 면담은 5시경 마무리됐고 장애계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한 협의안이 만들어졌다. 420경주공투단은 천막농성을 정리하고 경주시가 약속한 사항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경주시와 420경주공투단의 정책협의안. 사진 경북장차연
경주시와 420경주공투단의 정책협의안. 박원철 경주시 시민행정국장의 싸인이 있다. 사진 경북장차연